Drawing/Trees
2026. 5. 15.
그림과 얽힌 추억들
※ 내 기억 속의 단상들이니 그냥 가볍게 봐 주시기 바란다.
그림을 배우진 않아도 항상 그림에 대한 갈증은 어릴 적 부터 내면에서 꿈틀 거리고 있었다. 그림에 얽힌 첫 기억은 아버지가 스케치북에 연필 하나로 슥슥 선으로 만들어진 세계지도를 금새 그려내는 것을 본 것이 그림에 대한 인상 깊은 기억이다.
다재다능한 아버지 덕분에 나도 뭔가 내적 동기가 다양하게 꿈틀거리는 건 아닌가 싶다.
초등학교 때 부터 수요일 마지막 시간에 몇시간 동안 연속으로 이어진 특별활동반을 미술반으로 선택했었고, 과목 중에서도 항상 미술시간이 좋아서 2시간 연속으로 이어진 미술시간이 있는 날이면 그저 신이 났고, 미술시간이 다가오면 '이번엔 뭘 그릴까?', '뭘 만들까?' 싶어서 미술시간이 다가오면 가슴까지 두근거렸었다. 하지만, 난 우유부단한 성격 탓에 항상 손이 느렸고, 2시간이 다 지나도록 그 날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서 미술시간이 끝나도 10분 간의 쉬는 시간마다 이어 그리다가 그 날 집에 갈 때 쯤에야 완성되곤 했다. 미술을 체계적으로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었기도 했지만 아무래도 내 동작이 원래 너무 굼떴었나 보다.
기억에 남는 미술작품은 초등학교 때의 기억은 없고, 중학교 2학년 때 까만색 고무판화를 만드는 날 문방구에서 구입한 고무판으로 조각도를 이용해서 뭔가를 그리듯 조각도로 파내야 하는데, 미술책에 있었던 빌딩들이 잔뜩 서 있고 커다란 에드벌룬이 떠 있는 도시 풍경 수채화를 발견하고 고무판화로 조각해 나갔고, 역시나 그렇게 복잡한 그림을 선택한 탓과 나의 느릿한 동작 때문에 그 날 끝내지 못했는데, 생각 보다 많은 아이들이 다 끝내지 못해서 다행히 다음 미술시간까지 집에 가서 완성해 오는 것이 숙제로 결정됐다.
그 후 난 집에서 몇일 간 미술책에 있던 그림을 계속 해서 파 나갔는데 다 한 것 같다가도 조금 더, 여기도 조금 더 이렇게 보강해 나가면서 꼼꼼히 깎았다.
다음 날, 다 조각한 고무판화 결과물을 들고 선생님께 제출 했는데, 찬찬히 들여다 보시며 대뜸
"이거 니가 다 한거 맞나?"
"네, 제가 다 했는데요~"
"아닌 것 같은데~? 누가 도와 준 거 아이가~?"
"아뇨! 진짜 제가 전부 다 만들었는데요~!"
뭔가 찜찜하다는 표정과 의심의 눈초리로 고무판화를 꼼꼼히 쳐다보시던 그 모습은 왠지 의심은 받아도 기분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초등학교 6년 동안 미술 성적이 계속 <수> 였듯이 중학교 때도 별로 달라질 건 없었다.
중학교 1학년 때였던가, 그 날은 교내사생대회가 있는 날이었다. 오후 시간이 되자 모두들 학교 건물 뒷편으로 갔다. 워낙 시골 동네라 학교 건물의 뒷편엔 논들이 펼쳐져 있었는데, 이미 가을 추수가 끝나서 짚단더미가 집처럼 쌓여 있는 논들이 펼쳐진 곳 양쪽엔 산이 있고 오른쪽엔 길이 있었고, 중간 중간에 전봇대들이 세워져 있었다.
그냥 그 풍경을 그렸는데, 물감으로 채색까지 해야 하다보니 채색을 잘 하지 않던 나에겐 큰 도전이었다. 그렇게 전교생이 다 함께 나가서 흩어져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이젤까지 세워 놓고 제법 그럴싸하게 그려나갔지만, 역시 느렸다. 모두 다 끝나고 다들 집에 가려는 분위기인데도 끝까지 남아 그려서 결국 급히 마무리까지 해서 제출했던 그 평범한 그림이 몇일 뒤에 다른 친구 서너명과 함께 입상해 아침조회시간에 앞으로 나가 상을 받았다. 다른 친구들은 얼마나 못 그렸길래 내가 뽑혔나 싶기도 했었는데, 성적도 고만고만해서 중1 때 우등상을 한번 밖에 못 받아 본 나에겐 낯선 단상 앞으로 나가 상을 받는다는 것도 어설펐다.
역시 중학교 2학년 어느 미술시간에 이번엔 석고판에 조각칼로 뭔가를 파내며 조각하는 날이었다. 난 뭘 조각해야 할지 또 미술책을 뒤지다가 도깨비 기왓장 사진이 마음에 훅 들어 왔다. 이걸 조각해 보자. 쉽지 않을 것 같았지만, 재미있을 것 같아서 밑그림을 그리고 조각해 나갔는데, 역시나 느리게 만들다가 그 날 2시간이 모자라서 완성을 못했지만, 미완성 상태로 그냥 채점을 하고 넘어가셨고, 결과물을 학교에 제출해야 하는 건 아니어서 집으로 가져가 몇일 동안 깎았다. 특히, 송곳니가 인상적이어서 마지막까지 마무리로 그 큰 이빨을 둥글고 구부러진 송곳니를 깎고 또 깎았던 기억이 난다. 그 석고작품이 남아 있었다면 좋았을텐데 이후 어디로 갔는지 기억에 남아있질 않다.
제주도 출신이셨던 여자 미술선생님은 미인이셨다. 호리호리한 체격에 사투리가 없었던 말투는 아이들의 선망의 대상이 아니었을까 싶은 분이셨는데, 어느 날 그림을 그리고 싶은 사람은 미술실에 와서 그리라고 하시길래 그 날 바로 미술실로 갔다. 하지만, 뭔가 가르쳐 주실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냥 그리고 싶은 걸 그리라고 하시길래 왠지 좀 맥 빠진 듯 하게 그리고 있는데 갑자기 복도를 지나가시던 과학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너 거기서 뭐하노?"
그렇다. 시골 깡촌에 한 반에 거의 60명은 되었던 것 같긴 한데, 1학년 땐 1반은 남자만, 2반은 남여합반, 3반은 여자만 있던 3개반으로 나눠져 있었다가 2학년으로 올라가면서 도회지로 이사 간 친구들이 생기자 3반으로 나누기엔 좀 애매한 학생 수가 되어 결국, 남자와 여자 모두 합반으로 섞어 2개 반으로 나눠져 있던 그 시골 중학교에 과학선생님이 우리 아버지였다.
군악대를 나오셔서 피아노도 칠 줄 아셨고, 하모니카와 트럼펫도 불 줄 아시고, 색소폰도 불 줄 아셨는데, 테니스도 잘 치셔서 매월 월례대회에서 트로피를 받아 와서 집에 트로피가 굴러 다녔다. 심지어 그림도 제법 그리셨던 아버지는 참 다재다능한 탈렌트를 지니셨던 분이셨다. 심지어 아코디언도 연주할 줄 아신다. 어떻게 따라갈 수가 없는 요즘말로 '사기캐'다. 이야기가 옆길로 샌다.
미술반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던 나와 눈이 마주친 아버지는 뭔가 탐탁치 않은 표정으로 서 계셨는데, 나도 왠지 당황한 기분이 들고 있던 그 때, 미술선생님께서 나의 미술 실력을 칭찬하며 그림을 한번 가르쳐 보고 싶다!고 하셨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난 지금 어떤 길을 가게 되었을까?
하지만, 잠시 머뭇거리시던 상기된 얼굴의 미술선생님의 입에선 다소 의외의 말이 흘러 나왔다.
"아,.. 자기가 와서 그림을 그리겠다고 하네요...아하하"
마치 위험한 순간에 맞닥뜨린 그 때 혼자만 발을 빼는 것 같은 표정과 변명같은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얼굴이 벌겋게 달아 올랐고, 갑자기 벌거벗은 기분이 되었다. 그리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왠지 막연한 내 꿈을 지지해 주고 응원해 주는 분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마음과 잠시나마 내 편을 들어 주시진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이 피라미드 속에서 수백년간 바싹 마른 나뭇가지나 낙엽처럼 여지없이 바사삭 바스라져 먼지로 흩날리는 느낌이었다. 아마도 그 때 들었던 실망 가득한 기분이 '실망감'을 넘어 어쩌면 '배신감'이란 기분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 말을 들은 나는, 바로 일어 나 교실로 돌아 갔고, 그 후론 그 미술선생님을 쳐다 보지도 않았다. 그 후의 미술선생님의 모습이 전혀 내 기억 속에 떠오르지 않는 것으로 봐선, 아마도 상처 입은 작은 영혼의 중2짜리는 그 선생님을 애써 외면했던 건 아니었나 싶다.
1970년대에 태어난 우리들은 어린 학창시절, 접으면 까만색 직사각형의 플라스틱처러 보이는 작은 칼로 매일 연필을 깎고 또 깎았던 것이 어쩌면 조각을 하는 기초연습의 일환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도 그런 것이 연필을 깎을 때 마다 깎여진 연필의 모습을 생각하며 깎아 나갈 때 방망이 깎는 노인 정도는 아니어도 꽤나 공을 들여 깎았었고, 다 깎여진 연필들을 주욱 늘어 놓고 있으면 왠지 뿌듯한 마음이 들었던 기억들은 다 있을 것이다. 사실 나중에 알게 된 것이지만, 연필을 살 때 그 당시 2HB/HB/B/2B/4B 에 대한 개념이 없었던 지라 4B는 미술시간에 사용하는 연필 정도만 구분 했지만, 연필을 살 때 B나 HB를 구분해서 산 적은 없었다. 특히, 생일이 되거나 무슨 날이 되면 주로 받던 선물이 학용품이다 보니 일부러 사서 사용한 적은 별로 없고 대부분 공짜로 생긴 연필들이었으니 어떤 재질의 연필이 들어 올지는 나의 의지와는 상관이 없었다. 결국, 그냥 생긴 연필이니 연필을 사용할 때 글씨가 잘 써지는 연필이 있고, 어떤 연필은 이상하게 힘을 주어 써도 글씨가 잘 안써지는 연필이 있었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아마도 HB는 그럭저럭 사용했지만, 아마도 짜증날 정도로 글씨가 잘 안써지고 희미하게 써지는 건 아마도 2HB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 당시 글씨를 쓸 때 잘 써지지 않아서 스트레스를 받았던 이유가 연필심의 차이였다는 걸 알게 된 건 이 글을 쓰면서 깨닫게 되었다니 정말 당황스럽다.
중학교 3학년 때 우리 집에는 아버지의 직업 덕분인지 집엔 지금과는 다른 색인 회색끼가 가득한 A4종이가 넉넉하게 많았다. 그 당시 그 종이를 우리는 A4종이라고 부르지 않고 '16절지'라고 불렀던 건 다들 기억이 날 것이다.
아무튼 난 연필로 틈만 나면 수련장과 표준전과/동아전과에 중간중간에 아주 작은 일러스트 삽화 그림들이 너무 귀여워서 맨날 교과서나 연습장이나 16절지에 그 삽화들을 따라 그렸다. 지금 생각하면 그 삽화들은 일종의 일러스트 그림들이었는데, 계속 그리다 보니 너무 재미있어서 그리고 있다가 아버지에게 들키면 아버지는
"짝은 그림을 자꾸 그리면 그림 실력이 잘 늘지 않는다."
난 혼란스러웠다. 그림을 그리라는 건지, 그리지 말라는 건지 헷갈렸다. 일단은 그리지 말라고 제지한 것이니 몰래 그려야 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맨날 늦게 자던 나는 일찍 자겠다고 불을 끄고 바로 밑 둘째 동생과 함께 이불을 뒤집어 쓰고선, 이불 속에서 스탠드전등을 켜 놓고 그 표준전과와 수련장에 그려진 작은 일러스트 그림들을 따라 그리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림을 그리며 똑같이 그려낼 때 마다의 그 즐거움과 희열은 정말 너무 신나고 재미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땐 미술반은 입시반 학생들만 가입할 수 있었기 때문에 난 미술을 미술시간에만 접할 수 있었다.
어느 날 '구성'을 주제로 하는 그림을 자유롭게 그리던 날 하늘의 구름을 배경으로 큰 학이 한 마리 오른쪽 아래에서 왼쪽 위로 날개를 활짝 펼치고 날아가는 모습을 간략화 해 그린 후 채색을 하던 중 반 아이들이 대부분 완성을 못하자 덜 그린 거라도 들고 나와서 줄을 서서 80점 만점을 기준으로 한 명씩 선생님께 보여 드리고, 점수를 말씀 하시면서 채점하셨는데, 난 70% 정도 밖에 완성하지 못했지만, "78점!" 이라는 소리에 반친구들은 다 완성도 못했는데 왜 점수를 잘 주시느냐며 따졌지만, 다들 똑같이 완성 못한데다 그리고 있는 과정을 보면 결과물은 유추할 수 있어서 미완성은 점수에 반영하지 않겠다고 하시며 아이들의 이의제기에 일축하셨다.
지금도 그 때 그렸던 그림을 그리라고 하면 90%는 기억이 나니 그려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저런 미술과 관련된 추억들은 많지만, 미술선생님의 눈에 띄어 미대 입학을 권유 받은 적은 없는 걸로 보아 미대를 갈 수준의 실력은 아니었나 보다.ㅎ
인스타그램을 시작한 후 그림을 그리는 어떤 예술가의 계정(@visothkakvei) 을 방문했는데 펜으로 그리며 아주 천천히 느리게 그리지만, 아주 명확하고 또렷하게 그려나가는 그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마음이 평화로워지면서도 마음 속에 잠들어 있던 그림을 향한 마음이 꿈틀거린다. 그림은 엉덩이가 그린다는 말이 있다. 끈덕지게 끈기 있게 그려야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뜻이다. 그 사람의 그림은 정말 놀랍다. 그래서 그림을 다시 그려 볼려고 찾던 중 국내 미술선생님으로 유명한 김충현작가의 나무 그림 책을 사다 그려 보기도 했었는데 역시 미술가로 성공하지 못한 이유가 있었나 보다. 끈기가 부족하다. 작은 그림 하나 그리는데도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
아주 작은 나무 그림을 시작으로 한 그루 두 그루 그리면서 느낀 점은, 역시 그림은 인내심과 끈기가 대부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무 한루씩 서 있는 그림만 열댓 장 그리면서 점점 손에 감각이 무르익어 간다 싶다가 식상해지자, 인스타그램의 그 작가의 그림 중에서 작고 만만한 그림을 골라 그려보기 시작했는데, 이 그림은 이 작가의 그림을 따라 그린 서너개 그림 중에 마지막 그림이고, 지금까지 그렸던 그림 중에 가장 마지막에 그렸던 2025년도 그림이다. 한번에 그린 것이 아니라 몇일에 한번씩 퇴근 후에 조금씩 조금씩 그리다 보니 이 작은 그림이 몇달이 걸린 것 같다. 이 그림은 사실 좀 완성도가 떨어지는데, 자세히 들여다 보면 잘못 그린 부분이 꽤 있기 때문이다.

내가 좋아하는 인스타그램 예술가의 계정을 구경 가 보시길 권장한다.
이 예술가를 몇년 전 부터 팔로우 했었는데, 전문적으로 그림을 배우는 것인지 처음엔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비약적으로 실력이 향상되더니 지금은 엄청난 팔로워들을 가진 멋진 작가가 되었다. 인도에서 배우는 그 특이한 문양에 대한 그림들이 참 마음에 드는 작가인 것 같다. 그래서 가끔 그림에 대한 열정의 불씨를 되살리고 싶을 때면 이 작가가 그리는 그림을 보면서 사그라들어 가는 끄적임의 불씨에 다시 입김을 불어 넣어 보곤 한다. 하지만, 이 작가의 모든 작품들이 엄청난 시간과 노력과 손놀림이 필요한 작품들이라 엄두가 나지 않으니 그저, 이 작가가 그린 그림을 따라 그려 보며 굳어진 손가락들을 풀어 보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다.
ⓒ2025. Yeremiah K. Helios / 설마 / 박가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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