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냥이의 충고

Photography/Essay
 2024. 11. 5.  설마 

 

 

곰탱 : "주인님이 나에게 이럴 순 없어..." 

냥이 : "미련곰탱이... 내가 경고 했었지? 
          주인이 니가 젤 좋다며 속삭일 때 
          히히덕 거리지 말라고,
          언젠간 너도 내 꼴 날 거라고, 
          결국 내 이럴 줄 알았다... 냐옹~"  

 

 

Canon EOS 600D ❘ 2013-04-28 18:48:30 ❘ ISO-160 ❘ 패턴 ❘ 1/125(s) ❘ f/3.2 ❘ 75/1(mm) ❘ Auto WB ❘ Auto exposure ❘ Not Fired

 

 

고양이 이외 흑백 리터칭

 


멀리서 소재를 찾을 것 없이  주변부터 찾아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집을 나섰다. 하지만, 사진을 시작한 지 채 1년 남짓하여 통찰력 부족(?)으로 생각보다 많은 것이 눈에 들어오진 않았다.

이 동네 주변은 서울과 인접해 있지만, 아직 OO리 주소의 특성 상 아직 개발 진행 구역들이 있어서 그런지 철거 대상인 빈집들도 더러 있었고, 을씨년스러운 동네의 후미진 구역엔 다 쓰러져가는 폐가터에 온갖 양심없는 생활쓰레기들이 널부러져 있는 곳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잠시 주차를 위해 쓰레기 더미가 한 켠에 쌓인 공터에 차를 몰고 들어려던 그때 멈칫 브레이크를 밟았다. 그 옛날 '갑돌이'를 닮은 길냥이가 엉덩이를 땅바닥에 대고 주저 앉아 바로 앞 불법 폐기물 더미 위에 버려진 커다랗고 하얀 아니, 하얗지만 꾀죄죄한 곰인형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기이했다. 그 고양이는 왜 그 곰을 한참을 쳐다보고 있었을까. 차를 아주 천천히 몰아 뒷편에 조용히 주차를 했다. 숨을 죽이고 카메라를 들고 나서서 조용히 무릎을 꿇고 천천히 셔텨를 누르려는데 뒤를 돌아 보았다.

 

***


그러했으리라...
저 곰인형은 태어날 땐 순백색의 보드랍고 윤기나는 털을 가지고 있었고, 좋은 향기 마저 났을 것이다. 지금은 마치 온갖 궂은 시간을 견뎌 온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것처럼 꾀죄죄한 모습으로 땡땡하던 몸뚱아리는 주변의 따가운 시선에 눌려 납작해진 모습으로 드러누워 있었다.

주인 아이에게 선택되어 이끌려 갈 때만 해도 앞으로 행복한 날들만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을 것이다.
인형놀이를 할 때도, TV를 볼 때도, 책을 볼 때도, 잠을 잘 때도 항상 주인 아이 곁에서 행복해 했을 것이다.

어느덧, 주인 아이는 훌쩍 커버렸고, 아이는 곰인형보다 아이돌과 걸그룹들에게 더 마음을 빼앗겨 버리게 되자 자연스레 곰을 찾는 일도 줄어들게 되었을 것이다.
주인 아이의 손길이 줄어들면서 홀로 있는 시간이 길어지고 구석으로 밀려나다가 아이는 자신의 마음 속에 채워진 곰의 추억 게이지가 방전될 때 쯤, 100리터짜리 쓰레기봉투 한 장 마저 할애할 추억도 남아 있지 않았을 때 어느 날,

 "이 곰 갖다 버린다~~~"

엄마의 외침을 흘려 들으며 방관한 사이 어느 야심한 밤을 틈 타 동네 공터에 유기 되었을 것이다.

곰은 낯선 쓰레기 더미에서 따뜻한 집에서 주인과 함께 했던 시간을 뒤로 한 채 차디 찬 새벽이슬을 맞으며 주마등 같은 추억을 곱씹으며 처음엔 주인을 이해하려고도 했을 것이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주인이 원망스러웠을 것이다.

곰의 눈가에 맺힌 촉촉한 물방울은 간밤에 내린 이슬인지 눈물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미 오래 전, 같은 처지의 이웃집 길냥이가 나타난 것이다. 이 길냥이는 버려진 직 후 수 많은 고초를 겪으며 이 동네에 터를 잡게 되었고, 하루하루 끼니를 이 곳 저 곳에서 해결하며 지내던 어느 날, 새로이 등장한 곰탱이를 발견하고선 먼저 쫓겨날 때 자신을 비웃던 곰이라는 걸 눈치 채고 짧은 대화를 하고 고양이는 자리를 떠난다.


곰돌이 : (흐느끼며)"주인님이 나에게 이럴 순 없어..." 

길냥이 : "미련곰탱이... 내가 경고 했었지? 
            주인이 니가 젤 좋다며 속삭일 때 
            히히덕 거리지 말라고, 
            언젠간 너도 내 꼴 날 거라고, 
            결국 내 이럴 줄 알았다. 냐옹~"    

 

Canon EOS 600D ❘ 2013-04-28 18:48:42 ❘ ISO-125 ❘ 패턴 ❘ 1/125(s) ❘ f/3.2 ❘ 75/1(mm) ❘ Auto WB ❘ Auto exposure ❘ Not Fired

 

 

고양이 이외 흑백 리터칭

 

Reminiscence :
어릴 적엔 어머니가 싫어해서 키우지 못했고, 지금은 아내가 싫어해서 키우지 못하고 있지만, 난 고양이나 강아지를 키우고 싶다. 간절히. 하지만, 게으른 내가 과연 반려동물인 그들를 잘 챙길 수 있을까? 직장생활로 인해 집에 있는 시간이 적어서 내가 제대로 못 챙길텐데 그 동물에겐 못할 짓인 것만 같아서 내 욕심만을 채울 수는 없다.

더욱이, 아내는 매우 깔끔한 성격이라 항상 집을 깔끔하게 청소하며, 집안에 자질구레한 것을 늘어 놓는 것을 싫어하는 미니멀라이프 추구자라서 옷도 3년 이상 안 입으면 여지 없이 세탁해서 아름다운가게에 기부해 버리고, 항상 집안을 청결하게 청소하고 관리하고 있는 와이프 입장에선 강아지와 고양이는 그 옛날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무수한 털을 날리는 지저분하고 손이 많이 가고 쫓아 다니며 똥오줌을 치워주며 밥까지 챙겨주며 수발을 들어야 하는 완전히 애 하나 키우는 것과 다를 바 없다는 생각이니 거의 애물단지 일 뿐이다.

 


 

안동군에서 두번째로 벽지인 시골동네에 살던 시절, ㅇㅇ중학교 1학년 때 대구 할머니댁에서 막내동생은 택시기사의 핀잔어린 눈치를 뚫고 우여곡절 끝에 고양이 '갑돌이'를 우리집으로 데려온 적이 있었다. 우리 삼형제들은 정말 좋아했다. 그렇게 간절히 바라던 고양이가 생겼으니 얼마나 좋았을지 지금 생각해도 설렌다. 고양이를 집에 데려오는 일이라니 상상만 해도 행복하다.

하지만, 탐탁치 않게 여기셨던 어머니에게는 그저 털 날리고 아무데나 똥을 싸는 귀찮은 고양이였을 뿐이었다. 끼니마다 갑돌이의 몫이 제대로 고려되지 않던 날이 이어지니 알아서 제 살 궁리를 하기 위해 갑돌이는 집을 비우는 일이 잦아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산과 들로 수렵생활에 나섰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던 어느 날 몇 일 만에 돌아 온 갑돌이가 측은해 용돈으로 구멍가게에서 사다 준 단팥빵을 게걸스럽게 먹고선 그 날 이후 갑돌이는 사라졌다. 

 


 

몇 일이 흐른 뒤 집에 손님이 찾아 왔고, 난 동네 시장 어귀에 위치한 통닭집에 심부름을 갔다. 통닭집을 나서 작은 다리를 건너다 통닭집 건물 뒤 연기나는 굴뚝 아래의 뜨끈한 장소에서 낯익은 고양이와 눈이 마주쳤다.

갑돌이였다.

"갑돌아~ 너 거기서 뭐하↗냐↘~?"
반가운 나의 외침에 갑돌이도 몇십미터나 떨어진 개울 건너편임에도 불구하고 단박에 나를 알아보곤

"냐~~~옹"
하고 외치더니 먼 거리의 개울을 한달음에 돌아 와 나에게 달려왔다.
갑돌이는 계속 내 옆을 따라 오며 고소한 기름 냄새가 솔솔거리며 진동하는 통닭이 든 누런 봉지 아래에서 펄쩍펄쩍 뛰며 냐옹거렸다.
하지만, 그런 수척한 갑돌이를 나는 손님에게 할당된 통닭을 차마 꺼내줄 수 없었다. 소심한 나의 고지식함이 배고픈 갑돌이를 외면한 것이다.
집에 다다르자 갑돌이는 체념한 채 가버렸고 그 이후 갑돌이를 더이상 볼 수 없었다.


 

나는 살면서 두고두고 그 때의 내 행동을 후회하며 살고 있다. 몇일을 굶주렸을지도 모르는 갑돌이에게 나는 통닭 한조각 떼어 줄 수 없었던 우유부단함과 소심함을 탓하며 그때의 작은 기억은 내 평생 죄책감의 트라우마로 각인되어 나의 무의식 속에 깊게 자리잡게 되었다. 

지금도 가끔 길냥이들을 만날 때면 갑돌이를 만난 것 같아 항상 반갑게 불러보지만 그때마다  

'쟤는 또 뭐냐.. 가던길 가시지~'

라는 듯 잔뜩 경계심 어린 눈빛으로 쳐다보다 냉소적인 모습으로 가버리는 모습에 상처(?)를 받기도 한다.
그래서 요즘은 고양이 캔을 몇 개씩 차에 싣고 다니다 길냥이들을 만나면 하나씩 따서 주면 맛있게 먹는 고양이를 보며 그 시절의 갑돌이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대하고 있다.

요즘 매스컴에선 반려동물에 대한 사람들의 무책임한 모습들을 비난하며 책임있는 자세를 요구하는 보도가 심심치 않게 보도되고 있는데, 고양이와 개도 인간과 비슷하다. 밥도 먹어야 하고 물도 마셔야 하고, 어느 날 갑자기 아프거나 병에 걸릴 수도 있다. 단순한 욕심만으로 덥석 키웠다가 현실적인 벽에 부딪쳐 그들을 망가진 장난감처럼 버리는 일은 정말 잔인한 행위다. 지금 당신이 반려동물을 키우고 싶다면 심사숙고 하기 바란다. 
만약, 강아지나 고양이를 데려오고 싶다면 펫샵에서 사지 말고 그냥 일반 가정분양이나 보호소를 통해 입양하는 것을 권장해 본다.

하지만, 나는 지금도 고양이나 강아지와 함께 하진 못하지만, 그들의 영상을 보며 대리만족하고, 저 집사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하는 상상에 빠지곤 한다.

 

 



ⓒ2013. Yeremiah K. Helios / 설마 / 박가이버 
@beantree_parkgy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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